리스본행 야간열차
기성용은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하루를 시작해서 똑같은 시간에 하루를 끝냈다. 모든 것을 계획했다. 물론 변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변수조차 계획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은 그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벗어나는 것은 없었다.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가 계획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성용은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처절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이 나라에 정착하게 된 건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었다. 기억의 끝자락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이 도시를 처음 밟았던 날이 아직 남아있었다. 여기서 돈 많이 벌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던 부모님의 말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 중에 하나였다. 세상은 쉽지 않았다. 아니, 쉽지 않았다는 말은 약했다. 각박했다,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가족을 모두 데려갈 만큼.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갈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용은 이 낯선 도시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는 처절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그는 한없이 공격당했다. 그도 처음에는 한 대를 맞으면 일어나서 세 대를 때려주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봤자 돌아오는 건 불이익뿐이었다. 그걸 깨달은 게 열다섯이었다. 그 뒤로 그는 차분하고, 계획적이며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감정이 동요하는 순간 사람에겐 틈이 생기니까. 그는 그렇게 바뀌기 시작했다. 처절해졌다는 의미다. 덕분에 성용은 젊은 나이에, 동양인으로서는 꽤나 괜찮은 지위를 얻었다. 재미없게, 그리고 처절하게 살았기 때문에 얻은 결과였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난 기 교수 진짜 별로야.”
“왜? 수업 괜찮은데.”
“진심이야? 그 인간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무슨 뜻이야 너, 설마.”
“야, 솔직해지자. 동양인한테 서양사 배우는 거 어이없지 않아? 여기가 어디 중국이나 그런 나라도 아니고, 유럽 한복판인데!”
“너 그거,”
“조용히 해. 사실 너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 이건 차별이나 뭐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냥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게다가 젊잖아. 어떻게 이 대학에 들어온 건지 대체 모르겠어.”
“그를 무시하는 거야? 너도 수업 들었잖아.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
“이게 무시한 건가? 다만 나는 뒤가 구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높은 데시벨로 나누는 대화는 복도 저편에 있는 그에게까지 매우 잘 들렸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정확하게 들었으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교수의 자리에 앉은 뒤 끝도 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그는 머뭇거림 한 번 없이 같은 속도로 코너를 돌았다. 그를 먼저 발견한 여학생은 남학생의 입을 막았고, 아연실색이 된 두 사람을 그는 지나갔다. 들었을까? 당연하지! 너 진짜 미쳤어. 그런 대화가 뒤에서 들려왔다. 걸음의 방향과 속도는 여전했다.
*
그 날 아침은 조금 특이했다. 미묘하게 계획을 벗어나는 일들이 계속 생겼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커피를 내릴 물을 끓이지 못했고, 휴대폰으로 설정해둔 알람도 울리지 않았으며 미친 듯이 퍼붓는 비 때문에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은 몽땅 젖어 한 뭉텅이가 되어있었다. 성용은 미간을 찌푸렸다. 날씨 하나 때문에 이게 다 뭐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커피는 안 마시고, 신문도 안 읽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차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알람이 없어도 기상에는 별 문제 없었다.
성용은 아침에 있었던 변수 따위는 모르는 사람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조금도 주름 잡히지 않은 정장, 먼지 하나 없는 단색 넥타이, 말끔하게 넘긴 머리까지. 그는 학교까지 가는 동안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뉴스를 더 정확하게 듣기 위해 볼륨을 높였다. 아니, 높이려 했다. 그러나 생각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시선을 도로에 고정했다. 다리 위에 한 남자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 몸을 앞으로 숙였다가 다시 몸을 폈다가, 다시 앞으로 숙이며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었다. 이 빗속에서, 저런 행동이라니. 미친 건가. 그는 지나치려 했지만 어느새 발은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 도로 한쪽에 차를 대고 우산을 들고 내렸다. 성용은 지금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또 이해하고 싶기도 했다. 남자의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리고 그 눈동자가 담고 있는 위태로운 눈빛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 미쳤어? >
< ...... >
< 집에 가. 이런 위험한 짓 하지 말고. >
남자는 여전히 위태로운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이미 흠뻑 젖은 남자를 불안하게 쳐다보던 성용은 망설이다 그를 잡았다. 정장의 소매 끝이 젖기 시작했다. 그리곤 거리를 좁혀 남자를 자신의 우산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한국인?”
오랜만에 듣는 언어였다. 남자는 조금 쉰 목소리를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목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과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 때문에 답지 않은 친절을 베푸는 주제에 막상 그 언어로 된 그 단어를 들으니 당황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맞죠?”
“......”
“나 한 번만 살려줘요.”
오랜만에 한국어를 듣는 한국어의 내용이 이런 거라니. 그는 멈칫했다. 지금이라도 가까워진 거리를 물려야 할까. 지금이라도 이 남자의 손목을 놓아야 할까. 머릿속으로 팽팽 계산이 시작됐다. 늘 그랬던 것처럼.
“따라와요.”
오류. 계산된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성용은 남자에게 우산을 건네주고 앞서나갔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정신 차리라는 듯 빗방울들은 차갑게 떨어졌지만 감각은 모두 입안에 몰려있었다. 잘못된 값을 출력한 혀가 뜨겁다고 느꼈다.
*
4시간, 아니 3시간 안에 올게요. 여기에만 있어주면 고맙겠네요.
말에 뼈가 있는 걸 느꼈는지 남자는 몇 시간 전 봤던 모습 그대로 차 안에 있었다. 잠들어있는 것만 빼고. 곤히 잠든 얼굴을 보자 성용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출근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를 부탁할 곳도 없었으니까. 자신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도 싫었고, 그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도 싫었으니 답은 차에서 기다리라는 것뿐이었다. 살려달라고 했으니, 어떻게 살려줄지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겠지.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학교 근처 카페라도 가있으라고 할 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차 안에는 경쾌한 음악소리가 작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가 절대 듣지 않는 채널의 라디오였다. 계속해서 나오는 뉴스들이 지루해서 바꾼 것 같았다. 다시 채널을 바꿀까 생각했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차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약간 볼륨이 높아져있었다.
성용은 남자에게 한참을 이것저것 물어본 후에야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건 상식이라는 이유였다. 그렇기엔 이미 제 차 한 켠을 몇 시간 동안 내주었으면서. 그는 이런 모순을 남자가 깨닫지 않기를 바랐다. 남자는 꽤나 성실하게 대답했다. 왜 여기에 왔는지 그 이유만 빼고. 남자는 하나를 물어보면 세 가지를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들떠보였다.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비어있는 방을 안내해주고 제 공간으로 돌아온 그는 남자가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이름은 손흥민. 나이는 저보다 세 살 밑. 어려보이는 거 안다며, 거짓말 안 한다는 말을 덧붙였었다. 본래 사는 곳은 포르투갈 리스본. 직업은 매번 바뀌는 편이지만 학생은 아니라고 했다. 모든 것에 쉽게 질려서 그때그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산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이 곳에 온 이유가 일 때문은 아니라고, 자야할 곳을 구하지 못한 노동자는 아니니 경계하지 말아달라는 말도 농담처럼 했다. 여름에 태어났고, 겨울에 죽고 싶다는 말도 했다. 더위를 많이 타서 죽을 때는 땀 흘리지 않고 죽고 싶다는 무서운 말을 웃으면서 하는 사람. 아침의 일을 묻자 오게 된 이유의 연장선이라며 선을 긋기도 했다. 묻지 않은 죽고 싶은 계절까지 말해줬으면서. 이유 모를 섭섭함을 느끼며 했던 마지막 질문은 단순했다. 살고 싶어요? 흥민은 그 말에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도요. 그렇게 아마도 살고 싶은 사람과, 어쩌다 함께 살게 되었다.
*
남자, 그러니까 흥민은 적응력이 꽤 빨랐다.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살려달라고 한 사람과 분명 같은 사람인데 그런 모습이나 분위기는 다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꼭 사기라도 당한 느낌이었지만 성용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밝은데 그때는 왜 그랬냐고, 아니면 이렇게 밝은 너를 그렇게까지 만든 일은 무엇이었냐고, 그것도 아니면 그 모든 게 거짓이었냐는 말까지. 묻고 싶은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지만 입에서 문장으로 나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묻는 순간 흥민이 사라질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서 성용은 집에 돌아오면 대부분 말없이 흥민을 보고 있기만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말들을 삼켜가며 보고 있는 거지만. 흥민은 때론 그 시선을 의식하기도 하고 혼자 있는 것처럼 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대놓고 옆에 다가와 종알거리기도 했다. 특히 그렇게 이야기 할 때 성용은 중심을 못 지키곤 했다. 자기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의 얘기도 아닌, 이솝 우화 같은 것도 아닌 이야기를 종알거리는 걸 듣다보면 제가 만들어둔 루틴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원래 이 시간에는 진작 씻고 정치 뉴스를 보다가 강의 자료를 검토하곤 했었는데, 그 작은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뉴스는커녕 취침 시간까지 어길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집 근처에 수영장 있어요?”
성용이 출근할 시간이면 늘 자고 있던 흥민이 거실에 나와서 꼼지락거리고 있기에 어쩐 일인가 했는데 이게 궁금했구나, 싶었다. 갑자기 수영장? 되묻자 하고 싶어서요. 라는 간단하고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단 말이에요. 그런 말도 같이. 성용은 자신이 아는 곳을 알려주고 문득 거리가 좀 됐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걸어가기엔 멀 수 있으니 뒷마당에 있는 자전거를 타도 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문제는 한 번 걱정을 하자 끝도 없이 걱정이 이어진다는 거였다.
“자전거 탈 줄 알아?”
“정말 다행히 재작년에 배웠네요. 제가 사는 동네는 딱히, 자전거 타기 좋은 동네는 아니라서. 배우는 게 좀 늦었어요.”
“자전거 좀 녹슬었을 수도 있어. 잘 보고 타고.”
“걱정 마세요.”
“헬멧이, 어디 있을 텐데. 찾으면 꼭 하고 가.”
“그것도 걱정 마시구요.”
“여기 비 자주 오니까, 비 조금이라도 올 것 같으면 버스 타. 자전거 타는 거 위험해. 거기가 아마, 118번 버스가 갈 거야.”
“30분 넘었는데, 괜찮아요?”
흥민이 알아서 할 부분까지 오지랖을 부리다가 기어코 출근할 시간을 넘겨버렸다. 듣기 싫었던 건지, 불안했던 건지는 몰라도 시간을 알려준 흥민 덕에 성용은 급하게 겉옷을 걸쳐 입고 현관에서 구두로 갈아 신었다. 그러다 문득, 성용은 방금 전 흥민이 했던 말 중 하나가 걸렸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 물음에 답을 듣고 출발할 여유는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질문이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나 없을 때 혼자 많이 심심했어?”
성용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는지 흥민은 당황한 표정을 했다. 성용은 새삼 제가 미쳤구나 싶었다. 아니야, 됐어. 잘 놀아. 자전거 조심하고. 결국 대답을 듣지 않고 집을 나섰다. 출근하는 내내 제 질문에 무슨 말이라도 하기 위해 달싹이던 작은 입술이 머리를 맴돌았다.
*
정오를 넘어서야 집을 나가 자전거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이 그의 첫 일과였다. 그러곤 늘 대여섯 명뿐인 작은 동네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것이 흥민의 일과 중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물속에서 몇 시간씩 움직이고 나서야 밖으로 나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 기운 빠진 몸을 소파에 기대고 있으면 성용이 퇴근을 했다. 과일을 좋아하는 흥민의 취향을 알아버린 성용의 손에는 늘 과일이 종류별로 들려있었다. 그 과일은 늘 양이 꽤 많았지만 간단한 저녁을 먹은 후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은 테이블에서 곧장 사라졌다. 과일 바구니를 가운데에 둔 두 사람의 대화는 주로 흥민이 이끌었다. 그야 대게 똑같은 생활을 하는 성용보다 흥민이 이야깃거리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성격 차이가 제일 컸지만.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며 살구를 한 입 베어물면 잠깐의 공백이 생기고 그 사이에 성용이 가벼운 질문을 던지고, 금세 살구를 삼킨 흥민이 그 질문에 길게 대답을 하고, 그 대답을 하다 생각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면 밤은 금방이었다. 그 일상은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아직 복숭아 철 아니에요?”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2주는 더 기다려야 한다더라.”
“진짜요? 저 살던 동네에서는 지금이 한창 복숭아 나올 땐데.”
흥민은 이런 식으로 종종 자기가 살던 곳 이야기를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면 또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봐도 될까 싶다가도 첫날 마주했던 얼굴만 생각하면 그 말이 들어가곤 했다. 애초에 이렇게 작은 일에 신경을 쓰는 본인이 어색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저렇게 말하는 건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겠다는 뜻이겠지. 문득 성용은 그런 생각을 했다. 아주 당연한 것인데도 씁쓸하다는 생각을 하며. 둘은 미래 따위 없는 것처럼 지금을 자연스럽게 누렸지만 성용은 사실 제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요즘 가장 걱정하는 건 전적으로 손흥민에 관한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의심스러운 것투성이인데, 이 사람이 떠날까봐. 누군가에게 고민 상담을 할 수도 없었다. 미쳤다고 말할 것이 뻔해서.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살아왔던 저이기에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지 자신이 제일 잘 알았지만, 생각과 행동은 항상 일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애한테 나는 뭘 원하는 걸까, 나는 무슨 생각인 걸까. 성용이 계속해서 답을 찾던 질문이었다. 답은 금방 나왔다. 그러니까, 복숭아가 나오기엔 아직 일주일이 더 남았을 때에.
그 날의 날씨는 좀 요란했다. 해가 떴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회색빛에 도시는 어두컴컴했고, 비도 거세게 오고 있었다. 천둥과 번개도 이따금씩 치고 있었다. 꼭 그때 같았다. 성용이 흥민을 처음 만났던 날. 그래 딱 그 날씨였다. 그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시간이었다. 좀 흐릴 뿐이었던 아침과 다르게 성용이 퇴근 할 때가 가까워질수록 그때만큼, 아니 그때보다 더 날씨는 심술궂게 굴고 있었다. 학교에 남아 다음 강의 준비를 마무리하던 성용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꼭 이렇게 생긴 비와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던 사람, 무작정 한국어로 말을 걸더니 살려달라고 말했던 사람, 안전한 곳에 데려가지 않으면 정말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 같았던 사람. 그 사람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또 그렇게 위태롭게 있을 것만 같아서. 성용은 노트북을 덮고 급하게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그 애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흥민아!”
왜 나쁜 예감은 늘 현실이 되는 걸까. 성용은 비어있는 집 여기저기를 뒤졌다. 신발장에도 흥민의 운동화가 없고, 실내화만 있다는 걸 이미 봤음에도 집이 아니면 이 아이가 어디 갔을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서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며 집을 돌아다녔다. 불도 켜지 않아 어두운 집 안에 이따금씩 번개의 빛이 들어왔다. 떠난 걸까? 차라리 그거라면 다행인데, 어디서 또 힘들어하고 있다면? 끝까지 나에겐 안 알려준 그 이유 때문에 또 다리 위에 서있는 거라면? 성용은 집에서 그를 찾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결국 다시 밖으로 나갔다.
성용은 정말 말 그대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처음 만났던 다리부터 근처 모든 슈퍼마켓과 흥민이 관심 가질만한 작고 아기자기한 상점들까지 모두. 궂은 날씨 때문에 거리는 비어있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성용은 이 거리와 더 대비되었다. 성용은 그런 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붙잡고 흥민에 대해 물어볼 사람 하나 없다는 게 답답했을 뿐.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다시 집에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급하게 차를 타고 방향을 틀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집은 불이 켜져 있었다. 본인이 불을 키고 갔는지 끄고 갔는지 기억도 없으면서 성용은 작은 희망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직감과 감각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이 아닌데, 자꾸 감을 믿게 되었다. 문을 급하게 연 성용은 신발을 갈아 신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편한 옷을 입고 소파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흥민이었다. 성용은 안도와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너 어디 있었어.”
싸늘한 목소리가 흥민을 향했다.
“이게 뭐예요... 왜 이렇게 젖었어요. 차 안 가지고 나갔어요?”
“어디 있었냐고, 손흥민.”
“어디 있었냐니... 수영장 다녀왔죠. 평소처럼 여기 도착하니까 6시였는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연락도 한 통 없이.”
흥민의 그 말을 듣고서야 성용은 맥이 빠지는 걸 느꼈다. 감이 안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이성적이지 못하게 행동했다. 자신이 일찍 퇴근했으니 당연히 자신 퇴근 시간에 맞춰 수영장을 나서는 흥민이 집에 없을 수밖에 없었는데. 성용이 작게 한숨을 쉬며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방금까지 느꼈던 감정은 뭐였을까. 그저 집에 머물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자 생겼던 걱정?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 연락할 방도 하나 만들어두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본인을 향한 원망?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이건 조금 더 복잡한 마음이었다. 하나로 딱 설명되지 않는.
“형... 무슨 일 있었어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내가 미쳤었나.”
흥민은 성용과의 거리를 좁혔다. 어디 아픈가. 작게 중얼거리며 성용의 이마에 제 손을 가져다댔다. 성용은 그 손목을 잡았다.
“몇 번 더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리고 입이 맞닿았다. 아주 축축한 키스였다. 한 명은 빗물에 흠뻑 젖어있었고, 한 명은 수돗물에 젖어있었다. 곧이어 누가 어떤 물에 젖었었는지도 모르게 가까이 붙기 시작했다. 머리칼에만 있었던 물기는 점차 온몸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결코 로맨틱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바깥은 여전히 최악의 날씨를 자랑하고, 한 명은 구두도 벗지 않은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말끔하게 씻은 노력이 무용지물 된 모습이었다. 물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얼굴 언저리에 붙고, 미처 마르지 못한 물방울이 뚝뚝 거실바닥을 적시고 있지만. 그래도, 꽤나 괜찮았다. 방금까지 서로를 걱정하던 바보 둘이서 하기 딱 좋은 키스였다.
*
흥민 때문에 성용의 일상이 바뀐 것은 오래 전 일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변화들이 가벼운 봄바람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태풍의 강도였다. 그러니까,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변수까지 계획하던 사람은 손흥민이라는 사람이 선사해주는 예측 불가능한, 말 그대로의 변수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역시 표정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손흥민 생각이 나고, 그러면 또 그 애가 전 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고,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미소가 지어지고. 그 웃음과 미소는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따금씩 학교에서도 자꾸 웃게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갑자기 책을 쳐다보기도 하며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수십 명의 학생들 모두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이상한 소문이 생기곤 했다. 기교수가 어디 아프대. 그런 소문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가장 큰 변화가 성용의 표정이라면 두 사람에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역시 둘이 보내는 시간들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흥민이 침대에서 한창 단잠에 빠져있을 때 그 앞에 한참을 서성이다 이마에 입을 맞춰야 겨우 출근길에 나서는 게 성용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흥민이 깰까 작은 소리로 다녀올게, 말하는 것도. 항상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 하던 시간은 여전했다. 달라진 건 두 사람의 거리였다. 육체적인 거리. 작다고 말할 수 없는 덩치의 흥민을 성용은 기어코 제 무릎에 앉히곤 했다. 이야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형.”
“왜? 포도 먹을래?”
“형 손이 지금... 이런데, 읏, 포도가 입에 들어, 흐으... 오겠어요?”
“빼?”
아니라고 말할 걸 안다는 듯 얄밉게 웃으며 하는 말에 흥민은 눈을 흘겼다. 진짜,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빨라. 흥민은 고개를 팩 돌려 먼저 입을 맞췄다. 매일같이 과일이 바닥을 드러내야 끝냈던 하루 일과는 어디가고 이젠 과일이 남는 것이 당연해졌다. 매일 같은 패턴으로 하루가 끝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고, 성용은 따끈따끈한 몸을 껴안은 채로 잠에서 깼다. 예전 같았으면 끔찍하고 상상하기도 싫었을 갑작스러운 변화들이 성용은 반가웠다. 반갑다 못해 이렇게만 살 수 있으면 평생 바랄 거 하나 없겠다고 생각했다. 행복했다.
그러나 흥민은 조금 달랐다. 행복? 그래, 행복하긴 했다. 행복한 만큼 불안했지만.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는 명확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기 위해 온 곳에서 네가 잡을 건 없다고 확인 사살 당한 후 하루만, 아니 몇 시간만이라도 마음을 진정할 곳이 필요해 무작정 살려달라고 한 말이 정말 이곳에 살게 만들 줄이야. 싫은 건 아니었다. 좋은 것에 가까웠다. 바쁘고 복잡하게 살았던 리스본에 비해 조용하고 잔잔한 이 동네는 마음 정리하기도 좋았고 일상을 떠나 마치 휴가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제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걸 다 해주는 다정한 남자도 좋았다. 하지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근본적인 물음이 튀어나왔다. 여기서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
갑작스러웠다. 리스본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성용은 머리가 하얘지는 걸 느꼈다. 돌아간다고? 왜? 내가 못해줬나? 어제 너무 심하게 굴었나? 마음이 상한 걸 눈치 채지 못한 걸까? 머릿속으로 팽팽 계산이 돌아갔다. 나오는 값은 없었다.
“왜?”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는 없잖아요.”
“왜 안 되는데?”
“애초에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도 아니었고...”
“생각을 바꾸면 되잖아.”
“형.”
성용은 제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모두 고집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한테는 어느날 갑자기 제 인생을 구원하러 온 신 같았지만 그는 사람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가 쌓아둔 자신의 일상이 있는. 오래 되긴 했다. 벌써 계절이 두 번 바뀌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보내기가 싫어서.
“여기 온 거, 전에 사귀던 사람 때문이에요.”
“어?”
“헤어지고 붙잡으러 이 먼 곳까지 왔다가 허탕을 쳤죠. 그 사람은 잊었어요. 덕분이에요.”
처음에 만났을 때 말할 수 없다고 했었던 그 이유였다. 만난지 몇 시간도 안 되었으면서 말해주지 않는 것에 괜한 서운함을 느꼈던 그 이유. 이런 거라면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나았을 텐데.
“잠깐 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 머물게 될 줄은 몰랐어요.”
“흥민아.”
“덕분에 잘 쉬었어요. 이제... 가야죠, 저도.”
“그냥 간다고 이렇게? 너...”
나는 생각 안 해? 그런 말이 목 끝까지 나왔다가 들어갔다. 손흥민이 왜 나를 생각해야 하지? 우리가 무슨 사이지?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도 내릴 수가 없어서.
“안 가면 안 돼?”
결국 하는 말은 이런 어린 애 같은 투정이었다.
“제가, 그 사람만 잊은 줄 알았는데 다른 모든 걸 잊고 살았더라구요. 여기서 편하고 아늑하게 살았다고 그렇게까지 다 잊을 일인지. 이제야 기억이 났어요.”
“조금만 시간을 줘.”
“형, 그냥...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저도 제 자리로, 형도 원래 자리로.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아요. 원래대로 돌아가는 걸 더 힘들게 만들 뿐이에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문제는 아무것도 없어요. 덕분에 행복했어요. 진짜로.”
내일 마저 이야기 하자. 그런 말만 남기고 성용은 제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혼자 눕는 침대였다. 상식적으로는 여기서 끝내는 게 맞았다. 출신이나 하던 일도 정확하지 않던 이방인을 집에 들이고, 연애 놀음 하는 것처럼 굴었던 건 멍청한 일이 맞았다. 제가 고고하게 쌓아올렸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진작 멀어져야 했을 사람이다. 가까이 있을수록 포기하고 싶은 것만 늘어나니까. 하지만, 이미 포기하고 싶어진 것이 문제였다. 성용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계산하는 동안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다시 아침이었다. 성용은 흥민이 자고 있을 방을 한 번 쳐다보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복숭아를 사와야지. 예전처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더 해봐야겠다. 그러면 마음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이 살자고 해야겠다. 나랑 여기 있어달라고 해야겠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지배했다.
*
큼직하게 써진 글자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티켓, 리스본, 21시 30분 출발.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이었다. 그리고 사흘 후 이곳에 다시 돌아오는 티켓까지. 옆에는 쪽지가 있었다. 한 번도 그 애의 글씨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애일 것임이 분명한 쪽지. 사온 복숭아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중하게 골라온 과일 하나하나가 바닥을 구른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성용은 쪽지를 읽기 시작했다.
고마웠어요. 갑자기 떠나서 미안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못 갈 것 같아서. 티켓 봤어요? 그건 그냥 내 도박 같은 거예요. 이걸 선택하면 형이 버려야 하는 게 뭔지 나도 알아요. 그게 얼마나 많은지도 알고. 그래서 와달라고 조르진 않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걸어보는 거예요. 내 마지막 패.
선택권이 없었다. 손흥민은 이게 도박 같은 거라고 했지만 그 애가 가진 건 평범한 패가 아니었다. 그건 조커였다. 무조건 이기는 게임. 리스본으로 출발하는 중앙역은 이곳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지금 출발하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생각을 하며 동시에 움직였다. 리스본, 꽤나 먼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곳까지 가려면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이렇게 떠나기 위해 학교에 어떤 양해를 구해야 하는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하는 건 당장 기차표를 손에 쥐고 역에 가는 일이었다. 그보다 급한 건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알지만, 그냥 이렇게 사는 날도 있는 거지 싶었다. 처음 해보는 생각이었다.
기차는 아주 오랜 시간을 달렸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에는 아주 좋았다. 누가 봐도 수상했던 첫 만남부터 심장이 저리도록 행복했던 순간들과 덤덤하게 떠나야 한다는 말을 꺼내던 잔인한 순간까지.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결국 모두 한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
리스본은 처음이었다. 포르투갈도 처음이었다. 처음 방문하는 나라에 대한 소감은 단순했다. 여기가 네가 사는 곳이구나. 바보 같은 손흥민. 달랑 티켓 한 장만 주고 자신이 어디에 있을 건지, 어디에 있는지는 말해주지도 않았다. 연락도 하나 남은 게 없었다. 무작정 걸었다. 횡단보도를 몇 개를 지났을까, 쭉 이어진 거리를 얼마나 걸었을까, 큰 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건너편엔 드넓은 바다가 보였다. 아니, 강이라고 했었나. 강이라고 부르지만 바다나 다름없는 게 있다며, 거기에서 나는 짠내가 지독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는 그 동네에서 십 년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그 바다 냄새는 싫다고 했었던 이야기도. 광장과 강 사이를 지나가는 트램은 네가 종종 이야기하던 노란빛깔. 강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세지는 바람, 그 바람 때문에 거기에서는 갈매기도 제대로 못 난다며 푸하하 웃던 얼굴, 웃을 때마다 감기던 눈. 낯선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자꾸 사람 하나가 생각나서. 성용은 견딜 수가 없었다. 낯선 도시를 제대로 감상할 시간도 없었다. 감상할 수가 없었다. 하려고 해도 보이는 것은 사람뿐이었다. 내가 이렇게나 나약한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누구보다 나약해진 모습이었다. 보고 싶어서 그랬다.
“울어요?”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말투, 익숙한 웃음소리.
“짜잔”
뒤를 돌았다. 성용이 가진 것을 하나하나 포기하게 만들던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공연을 끝낸 마술사의 포즈를 장난스럽게 취하고 있는 흥민은 여전했다. 사랑스러웠다는 뜻이었다.
“내가 꽤 괜찮은 도박을 했었나 보네요.”
“네가 왜 이 도시에 돌아오겠다고 했는지 알겠어.”
“왜요?”
“너랑 너무 어울려서.”
“어떤데요, 형이 보는 리스본은?”
“모르겠어.”
“형 입에서 그런 말도 나오네요.”
정말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흥민과 잘 어울리는 도시임에는 분명했다. 다양한 색채와 다양한 사람들, 그들의 다양한 표정들, 예측할 수 없는 골목들과 예측 가능한 언덕들, 적당한 온도의 공기와 그 공기를 전해주는 바람, 뜨겁지 않은 햇살과 그걸 즐기는 도시 곳곳의 생명체들.
“사랑해.”
이 도시를 닮은 너를, 이 도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