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마이 달링
‌딜러



 열여섯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아빠 장례식장에 갔다. 그는 나의 아빠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사람들은 그를 백이사라고 불렀다. 남들보다 늦게 글자 배울 때 돼서야 내 이름 승호 앞에 ‘백’이 붙는다는 걸 알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깡패랍시고 아빠 행세를 하고 싶었던 백이사가, 사실은 저가 땅에 묻은 인간 밑에 이런 어린 애가 딸려있을 줄은 몰랐어서. 피도 눈물도 없을 줄 알았던 백이사는 내게 그저 가장 큰 아빠에 불과했다. 그는 조직 안의 모두를 나의 아빠로 만들었다. 뒤늦게 들어간 초등학교에서 아빠 뒤에 ‘들’ 복수형이 붙는다는 게 특별하다는 걸 알게 됐다. 서류 상 백이사의 아들은 맞았으나 나는 보통의 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 킬링 마이 달링 >



 아빠들은 낮에는 색연필을 들었고 밤에는 총을 들었다. 아빠들의 나이는 다양했다. 그 중 나의 일기장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건 백이사가 아니었다. 사채업자들을 피해 숨었던 옷장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앳된 남자였다. 나는 한 번도 남자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열 살 조금 안 되는 나이 차였다. 우리는 다른 듯 닮아있었다. 고아원에서 독기 품은 아이 잡아오는 게 백이사 취미였는지 그 당시 그 남자 또래가 여럿이었다. 정작 독기는 남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품었다. 백이사 죽고 그 어린 나이에 맨 우두머리를 차지한 건 서른 조금 넘은 기성용이었다. 내가 열여덟 되던 해, 백이사 후계자로 불리던 이 중 하나가 목이 잘린 채 발견됐다. 피가 묻은 이사실은 목을 친 기성용의 차지가 됐다. 남자는 기성용과 같은 고아원 출신이었다. 엉엉 우는 걸 두고 가질 못하겠어서 데리고 왔다며 기성용은 가끔 술판을 깔아놓고 그 얘기를 했다. 다른 아빠들은 그 말에 웃었는데 남자만 웃질 못했다.

 손흥민, 어린놈이 더 어린놈을 끌어안고 백이사 앞에 섰다. 애기가 있었어요. 정작 옷장 안에 갇혀있던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손흥민이 울었단다. 인생 꼬인 건 그때쯤이었다. 어차피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손흥민도 같은 루트였다.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산다는 전제의 선택지는 고아원 형이었던 기성용 따라가는 거였다. 그래도 그렇게 꼬인 인생은 아니지 않을까. 백이사 보다 더 피도 눈물도 없는 기성용은 손흥민을 아꼈다. 조직원 치곤 감정이 앞서는 손흥민이 버려지지 않고 눌러앉은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그 덕에 나 놀아주는 건 총 쏘는 데에 영 흥미 없는 손흥민 차지였다. 겉으로 볼 땐 기성용과 별 다를 바 없는 앳된 외관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기성용은 내게 어린 아빠였고 손흥민은 그저 형이었다.

 나의 아빠들은 죽는 이도 있었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도 한 번도 백이사 같은 거한 장례식을 치른 적은 없었다. 이 서열사회를 이해하고 환경을 깨닫게 된 건 백이사가 세상을 뜨고 몇 년 뒤, 조직의 우두머리에 오른 기성용이 건넨 자퇴서가 시초였다. 총 다루는 걸 배워. 이 길을 걸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사람 되고 싶단 생각은 있었지. 더러운 환경에서 자란 거 치곤 환상이 컸다. 어린 나를 제 친자마냥 대하던 백이사의 투자 덕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옆에서 나를 놀아주던 손흥민도.
 백이사는 내 환상을 지켜주고 싶어 했지만 기성용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형식상 아빠, 라고 불렀지만 그는 내 손을 잡고 예의 웃음 한 번 띄어준 적이 없었다. 그만 놀고 들어오라며 손흥민 타박하는 게 내 기억 속 전부였다. 백이사는 몰랐겠지만 깡패 놈들 인성이 어디 간다고 대가리에 피도 다 안 마른 날 두고 내 친부모가 땅에 묻혔다는 걸 말해줬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럼 아빠들도 땅에 묻혀요? 아빠들이 웃었다. 우린 돈 같은 거 안 빌려서 안 묻혀. 고작 열다섯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애 눈높이에 맞춰 해준다는 말이 그거였다. 내 지지대는 돈을 투자해주는 백이사, 그리고 투박한 말투의 아빠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흥민 형, 이 둘이 보통의 사람들이 말하는 가족 범주에 들어있었다.
 그래서 백이사가 세상을 떠났을 땐 눈물 찔끔했다. 형, 나는 이제 버려져요? 그 말을 듣고 흥민 형이 더 울었다. 아냐, 누가 그래. 내 머리통을 감싸 안고 나를 보호하듯 안는 건 손흥민의 버릇이었다.

 백이사의 집에서 생활하던 나의 거처가 옮겨졌다. 이제는 기이사로 불리는 기성용의 집이었다. 하나 확실한 건데 내가 기성용에게 버려지지 않은 이유는 모두 손흥민 때문이다. 기성용의 널따란 집엔 손흥민이 살았다. 손흥민 눈엔 아직도 초등학생 어린애일 뿐이었던 나는 보살핌을 받는 동시에 눈엣가시 역할을 맡았다. 조만간 죽겠다. 자퇴서 내밀 때 싫어요, 한마디 하자마자 싸늘하게 변하던 기성용 눈을 보고 그리 생각했다. 내 투정 다 받아주던 백이사가 그때 돼서야 진짜 아빠였구나 싶었다.
 학교를 늦게 들어갔던 나는 열여덟 나이에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가지 못했다. 기성용의 선택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손흥민이랑 시내를 나간 날엔 이름도 모를 학교의 교복을 샀다. 나 잘 어울려요? 거울을 보고 말끔하게 펴진 셔츠를 한 번 털어댔다. 귀여워. 거울에 비친 손흥민의 미소 따라 나도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공부에 매진하는 나를 꿈꿨다. 필통에 있던 샤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정작 손에 들린 건 권총이었다. 뭣도 없는 들판에 날 내려준 기성용이 낡아빠진 판때기에 대고 총구를 조준했다. 집중해. 내 손 위로 제 큰 손을 감싼 기성용이 방아쇠를 당긴다. 귀를 찢는 소음에 놀라 눈이 커졌다. 저 멀리 있는 판때기에 총알이 박혀있었다. 한 발자국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손흥민이 뒤늦게 고개를 돌린다.

 나는 이따금 손흥민 앞에서 우는 날이 많았다. 이유는 무수했다. 축구 하다가 넘어져서, 백이사가 게임기 안 사줘서, 백이사가 죽어서, 기성용이 자퇴하라고 해서, 고등학교를 못가서..., 그래서 내가 스무 살 되던 해까지 손흥민은 나를 마냥 어린애로 봤다. 같잖은 자존심인지 어린 내 앞에서 우는 게 싫었던 손흥민이 몰래 우는 걸 본 건, 손흥민이 처음으로 총 들고 현장에 나간 날이었다. 손등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건물 뒤편에서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입을 앙 다물고 뚝뚝 눈물을 떨구는데 마냥 어렸던 나는 와중에 형 주겠다고 사탕 찾으러 백이사 사무실에 갔었다. 손흥민이 가장 좋아하는 레몬맛 사탕을 들고 왔을 땐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기성용이 손흥민을 토닥이고 있었다. 형 나는 여기가 싫어..., 울음에 파묻힌 목소리가 절규와 같았다. 미안해, 기성용이 그렇게 읊조렸다.

 마냥 마르고 작아보였던 손흥민도 시간이 지나니 여러 곳으로 흩어진 다른 아빠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더 컸으면 컸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기성용이 군림하고 조직원들은 빠르게 바뀌었다. 손흥민은 더 많은 시간을 기성용 옆에서 보냈고 손흥민 따라 이사실에 눌러앉은 나는 손흥민이 시내 서점에서 사온 문제집을 풀었다. 기성용이 손에 쥐고 있던 커피가 종이를 적시기 전까진 그랬다. 문제집은 휴지통에 들어갔고 나는 기성용 커다란 손에 턱이 잡혔다. 너 몇 살이지. 고등학교 일학년이요. 그거 말고. 열아홉이요. 형, 하지 마.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손흥민이 기성용 팔을 붙잡고 말린다. 승호야, 아빠 말 들어. 차분히 내리깐 시선이 맞닿는다. 눈물이 차는 대신 혐오감이 들끓어 올랐다. 대답해야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두려움 같은 게 아니었다. 적대감과 같았다. 정적이 길어지니 기성용이 먼저 손에 힘을 뺀다. 누가 아빤데요. 목구멍까지 찬 말을 삼켰다. 내 턱을 쓰다듬는 기다란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걱정이 가득한 얼굴의 손흥민이 있었다.

 성인이 되길 일 년 앞두고 기성용은 나를 옥죄었다. 교복 입은 나를 보곤 그대로 교복을 불태웠다. 한 번도 손흥민 앞에서 언성 높인 적 없던 기성용이 대놓고 손흥민 앞에서 미간을 좁혔다. 이런 거 사다주지 마. 내 방 책상에 쌓인 문제집들이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기성용은 꾸준히 내 손에 총을 쥐어줬다. 하는 둥 마는 둥 성의 없는 태도에 처음으로 기성용이 내 목을 조였다. 허허벌판엔 나와 기성용, 그리고 여전히 걱정스레 날 바라보는 손흥민 뿐이었다. 형 하지 마. 놀라 달려온 손흥민이 기성용 팔에 매달린다. 기성용은 여전히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도 없는 고양이 주워왔음 눈치 살피며 잘 살아야지. 기성용 악력에 밀려나 뒷걸음질 치던 내가 숨통이 트이자마자 그대로 무너졌다. 다 죽은 잔디 위로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이 길게 늘어진다. 허억, 헉... 듣기에도 거북한 소리들이 이어졌다. 손흥민이 내 앞에 무릎 꿇고 내 등을 쳐준다. 코 끝에 담배냄새가 묻어진다. 기성용이 담배를 입에 물곤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손흥민 뒷통수를.

 그날 밤 저녁식사 자리에 나오지 않은 나를 손흥민은 방문 앞에서 기다렸다. 형은, 내 기억이 시작되는 어느 부분 속 형과는 많이 달라졌다. 백이사한테 가장 많이 혼나던 건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차라리 마을 순찰 도는 경찰이 더 잘 어울렸다. 깡이 없는 건 아닌데 기성용만큼 칼 같진 못했다. 백이사는 손흥민이 눈물 질질 짜는 것조차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손흥민 허리춤을 안곤 같이 울었다. 항상 나를 껴안아주는 건 손흥민이었지만, 정작 손흥민이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백이사의 총애를 받던 어린 아이의 관심사가 온통 손흥민이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당시에 나는 그걸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이 바닥에서의 저가 점점 죽어간다는 걸 알았다.

 조직 내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던 건 당연히 나였다. 중학교도 채 못나온 손흥민이 연필을 다시 쥔 건 수학 문제집을 들고 와 풀어달라고 하는 나 때문이었다. 나는 손흥민이 존나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노력형 똑똑이였다. 형도 이거 모르죠. 내 말에 손흥민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었다. 밤 새면서까지 안 그래도 되는데. 당장 불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전구 밑에서 풀이를 옆에 두고 볼펜 끄적이던 손흥민을 본 이후로 나는 굳이 손흥민에게 문제에 대한 해설을 요구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퍽 속상해 보였다. 나도 문제 푸는 거 좋아서 그래. 기어들어가듯 하는 말에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기성용은 내 하루를 사사건건 간섭했다. 꼰대새끼...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뉘였다. 축구 하러 간다는 걸 두고 조직원들을 옆에 붙이길래 신경질적으로 다시 방에 들어왔다. 내가 저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 운동장까지 굳이 가 또래 애들과 어울려 노는 게 아니꼬워 그런 걸 알았다. 그럼에도 또래와는 말 한 번 제대로 섞은 적 없었다. 걔네는 축구 조금 하다가 공부해야 한다고 사라지니까. 누가 책가방에서 툭 떨군 수능 문제집을 그대로 집에 가져온 걸 들킨 게 화근이었다. 손가락을 잘라야 그만 둘래. 내 손을 구둣발로 짓이기던 기성용을 말리는 건 여전히 손흥민이었다. 까진 흉터가 아물지 못한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애기야.”
 “애기 바빠요.”
 “그러게, 성 내느라 바빠 보이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손흥민이 내 주름진 이마를 꾹 누르며 웃는다. 손흥민 휘어지는 눈 따라 나도 결국 헛웃음을 뱉었다. 지금 기분 진짜 구려요. 손흥민이 다 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형이 좀 말해 봐요.”
 “뭘?”
 “공부 시켜주면 총 연습도 더 열심히 하겠다고.”

형은 아빠가 좋아하잖아요. 뒷말은 삼켰다. 내 입으로 정정하고 싶은 사실은 아니었다. 손흥민은 별말이 없다.

 “형도 나 공부 가르쳐주는 거 좋다면서요.”

그러니까 같이 공부하면서, 총도 배우고. 호기로운 내 목소리에 손흥민이 결국 웃음이 터진다. 나 진지한데. 침대에 걸터 앉아있던 손흥민 옆으로 가 그대로 쓰러졌다. 손흥민도 따라 뒤로 몸을 쓰러뜨린다. 그거 때문이 아냐. 천장을 바라보던 손흥민 호흡이 길어진다. 고개를 돌렸을 땐 손흥민의 짧은 속눈썹이 느리게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홀린 듯 바라보니 눈이 마주친다. 나는 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손흥민이 웃는다.

손흥민이 내 기발한 아이디어에 비웃음을 선사했던 이유는 얼마 안 가 알게 됐다. 조직 내 기밀문서 빼돌리는 거 같다던 조직원 하나가 그대로 기성용 손에 뒤졌다. 허물만 자식새끼인 내 손에 굳이 총 쥐어주는 이유가 제 사생활 보호와 같은 거였다. 쥐새끼 마냥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를 예의주시 하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리고 손흥민 옆에 붙어있는 내가 아니꼬워서. 이게 더 우선시 되는 이유인지도 몰랐다.

아침 식사를 셋이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현장에 나간 적도 없을뿐더러 아직까지 조직원이라는 이름 달기엔 애매한 나를 두고 기성용과 손흥민이 먼저 집을 떠나는 일이 많아서였다. 그러니 오늘의 아침은 확실히 특별했다. 그릇을 먼저 비운 기성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오늘 언제 나가요? 손흥민에게 말을 거는 내 목소리가 정적을 부수자마자 기성용이 부엌을 벗어나려던 몸을 멈춘다. 어깨 위로 커다란 손이 올려졌다. 승호야.

 “아빠라고 불러야지.”

턱이 다시 우악스레 붙잡혔다. 고개가 빳빳히 들린다. 내 앞에 앉아있던 손흥민이 불안감 가득한 눈으로 나와 기성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 봐, 아, 빠. 입이 기성용의 악력으로 인해 벌어졌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오기였다. 턱을 쥔 손에 힘이 가해질수록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고 싶어 목 끝까지 찬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지만 그건 기성용이 원하는 그것과는 달랐다.

 “형.”

턱에서 멀어진 손이 머리채를 붙잡았다. 테이블 위로 얼굴이 처박힌다. 마찰음과 함께 그릇이 바닥 밑으로 떨어졌다. 의자 끄는 소리가 난다. 손흥민이 기성용을 말리러 다가오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산만했던 소음들이 가시고 기성용의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승호야. 역겨운 부름이었다.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얼굴이 들리자마자 다시 테이블 위로 처박혔다. 코가 깨질듯 아파왔다. 테이블 위로 피가 흐르는 걸 보니 기어코 코피가 터진 듯 했다. 뒤통수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모두 손흥민 것이었다. 그제야 쥐어뜯길 거 같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이 멀어졌다. 괜찮냐는 물음은 없었다. 손흥민이 미련 없이 집을 나서는 기성용을 쫓아갔다. 집 안에 남겨진 건 나뿐이었다.

 손흥민은 그 이후로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젠 다 커버린 나를 놀아주는 건 손흥민 뿐이었는데. 깡패들이 귀엽다고 까까 사줄 나이도 지났고, 아빠라고 불리는 이들도 거의 사라진지 오래였다. 모르는 얼굴들이 넘쳐났으니, 조직원들 사이에 낄 일도 드물었다. 고로, 손흥민 없는 나는 그냥 외톨이다. 침대에 누웠을 땐 어쩐지 손흥민 생각이 났다. 천장을 바라보던 눈, 짧은 속눈썹 그 밑으로 있던 눈물점. 손흥민은 기성용이랑 섹스 할까. 형은 우리 아빠랑 섹스해요? 묻고 싶은데 묻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패배감이 들었다. 며칠 안 지난 아침에 부러 문 열고 손흥민이랑 섹스 하는 기성용을 본 후엔 그대로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 붙잡고 속을 게웠다. 혐오감이 끓어오른다.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운 정사였다. 팔랑이던 손흥민의 다리와 콧소리 섞인 신음들이 슬로우모션으로 재생된다. 섹스는 둘이 했는데 왜 내 머리엔 손흥민만 남았는지. 감옥에 수감된 사람 마냥 방에 처박혀 손흥민, 손흥민, 손흥민, 손흥민 생각 밖에 안 했다. 중심을 쥐고 흔들며 허억, 허억, 짐승 마냥 뜨거운 숨을 뱉어낸다.
 그래서 언젠가, 영원히 나랑 말 한 번 안 섞을 거 같던 손흥민이 혼자 집에 들어온 날, 또 그때처럼 제 피로 물든 손등 쥐고 엉엉 우는 걸 모른 체 할 수가 없어서, 사실 그때 레몬사탕 준다며 자리 떠 새치기 당했던 기회를 이젠 좀 잡아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손흥민을 품에 안은 새벽이었다. 손흥민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승호야, 내가 오늘 몇 명을 죽였는 줄 아니. 울음 가득한 목소리가 그때의 절규와 같았다. 나도 여기가 싫어. 제정신이었음 하지 않을 말인 걸 알았다. 나한테 매달리듯 안기는 손흥민 등을 더욱 힘 줘 감싸 안았다. 덜덜 떨리던 몸 따라 불규칙하게 내뱉어지는 숨소리가 진정 될 기미가 없었다. 형, 괜찮아요. 어릴 적 손흥민이 나를 안아주던 그대로 나는 손흥민 머리통을 감싸며 귓가에 속삭였다. 승호야, 괜찮아. 형 여깄어. 형, 괜찮아요. 저 여깄어요.
 기절하듯 잠든 손흥민을 부러 내 방에 재웠다. 눈 떴을 땐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손흥민 뺨을 괜히 쓰담았다. 입을 맞추고 싶었는데 그럴 용기까진 없었다. 새벽과 달리 평온해 보이는 얼굴 보는 걸로 만족했다. 손등으로 한참 보드라운 뺨을 쓰는데 방문이 힘없이 열린다. 기성용이었다.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이 들어찼다.

 그 날 이후 집에서 내쫓길 거라 여겼던 나는 다행히 내 방에 멀쩡한 얼굴로 자고 쉬고 할 수 있었다만, 손흥민과는 일절 눈을 마주칠 일 조차 없었다. 같은 집에서 사는 게 맞는 걸까 싶을 만큼 손흥민 보는 게 힘들었다. 오히려 집에서 내쫓긴 게 손흥민이 아닌가 의심까지 들 판이었다. 그럼에도 내 방과 멀리 떨어진 기성용 서재 주변을 어슬렁거릴 생각은 없었다. 기성용의 일그러지던 얼굴은 평소 보던 차가운 눈과는 사뭇 달랐다. 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흥민 형은 어딨어요? 코피 터져가며 대들던 그때처럼 묻고 싶은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던 기성용 따라 손흥민도 종적을 감췄나 싶었다. 새벽녘 공중으로 피어오르던 담배연기를 눈치 채지 못했다면 영영 손흥민을 못볼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베란다 문을 여니 구석에 쭈그려 앉아 담배 피우는 손흥민과 마주쳤다. 손흥민이 담배 피우는 건 그때 처음 봤다. 분명 최근에 입에 댄 게 분명했다. 남자의 셔츠에서 한 번도 담배 찌든 내를 맡은 적이 없었다. 영영 레몬맛 사탕과 비슷한 향이 날 것만 같던 손흥민도 입에 담배 물고 색종이 사주던 깡패 아빠들과 별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뒤늦게 손흥민 얼굴 위로 난 상처들이 선명해진다. 왜 안 자니. 힘없는 목소리가 꼴에 또 형 행세를 하겠다고 담배를 짓이겨 끈다.

 “기성용이 그랬죠.”

손흥민 앞에 무릎을 꿇은 내 손이 피딱지 얹은 상처 위를 배회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손흥민이 성용형도 집에 있어, 짧은 경고를 하곤 다시 입에 새 담배를 물었다. 얼른 가서 자. 눈이 텅 비어있다. 불을 붙이는 느린 손길을 가만히 바라봤다. 손흥민이 부러 내 눈을 피한다. 여전히 가느다란 손목을 감쌌다. 살짝 당황한 손흥민 눈이 커진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내 입 앞까지 들이밀었다. 막대 끝을 살짝 빨곤 그대로 연기를 뱉어낸다. 맛없는데 왜 피워요. 입꼬리가 올라가자 손흥민도 결국 따라 웃었다. 어쩐지 손흥민 눈에 눈물이 차있었다. 좆같아서 피우는 거지. 평소처럼 화사하게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다 못해 축 처진다. 벌겋게 일어난 피딱지들 위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는 손흥민 눈이 빠르게 꿈뻑인다. 손을 들어 눈물을 훔쳐주니 기어코 몸을 들썩이며 운다.
 형,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형은 내가 울 때도 예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런데요, 형이 우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형 뺨을 감싸 나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어깨를 밀어내던 손길이 얼마 안 가 잠잠해진다. 혀가 진득히 섞였다. 고요한 입맞춤이었다. 형의 짧은 속눈썹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형, 도망갈까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 도망갈까요.






 새벽의 야반도주는 멀지 않은 날 이뤄졌다. 우리 들키면 죽는 거야. 저는 형이랑 죽는 건 좋아요. 손흥민이 헛웃음을 쳤다. 도망가는 건 쉬워, 내일 당장 잡힐 게 문제지. 우리는 거대한 계획을 세웠다. 아무도 없는 세상 저 끝으로 가 집을 짓고 살자는 환상 가득한 말들을 지껄이곤 했다. 대문에 달린 센서를 제거하는 일은 손흥민 손에서 쉽게 끝났다. 이층 베란다를 통해 내려가는 길이 곤욕이었지만 풀벌레 우는 소리에 신발바닥이 철기둥과 맞닿아 일어나는 마찰음은 쉽게 묻혔다.
 손흥민은 하루 전날 내게 생전 가져보지 못했던 핸드폰을 쥐어줬다. 문자만 받을 수 있게 돼있어. 나중에 더 좋은 걸로 사줄게. 아무리 바깥일을 몰라도 손흥민이 쥐어준 핸드폰이 요즘 쓰는 핸드폰 아닌 건 잘 알았다. 키패드가 그대로 버튼 마냥 툭 튀어나온 게 웃겼다. 화면도 조막만한 게 어디 드라마 소품으로 쓰일 법 했다. [52가 6725] 커다란 대문을 열고 나오니 손흥민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세워뒀다는 차 번호판이었다. 우리는 이 차를 타고 저 멀리 떠나겠지. 바다가 보이는 곳이 좋다고 했던 형 따라 바닷바람 맞으며 손흥민을 껴안고 맞이할 아침을 상상했다.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넓은 들판이 공허했다. 이젠 다시는 안 올 곳이었다. 피딱지 얹은 얼굴의 형도, 손등에 피 묻히고 오는 형도, 새벽 몰래 울음을 삼키는 형도, 이젠 더 이상.

[차 끌고 멀리 가]
[따라갈게]

가만히 멍을 때리니 작은 화면에 문자가 두 통이나 날아와 있었다. 예정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문자만 받을 수 있는 폰이 원망스러울 때쯤 한통의 문자가 더 도착했다.

[형 믿지 승호야]

망설이고 있을 거 어떻게 알았나 싶었다. 나는 그 문자를 받자마자 주저 않고 차키를 꽂았다.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운전대를 잡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총 쥐는 걸 그렇게 괴롭게 바라보던 손흥민은 무면허 운전은 괜찮은가 싶었다. 무작정 엑셀을 밟는다. 멀리, 멀리, 끊기질 않는 길 따라 나는 서툰 운전을 해댔다. 고요한 새벽 주위에 차 하나 없는 게 다행이었다. 차 선 하나 지키지 않고 비틀비틀 술 먹은 거 마냥 움직이는 차 한 대 곁으로 경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집 근처를 벗어난 지 한참이었다. 시내를 들어서서 그러나 싶었는데 엉성하게 운전하는 나를 본 체도 않고 지나간다. 경찰차 소리가 요란스레 울리고 있었다. 경찰차가 멀어진다. 멀리, 멀리, 기성용 집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뭐에 홀린 거 마냥 브레이크를 밟는다. 도로 한 가운데에 멍하니 선 차 안에서 나는 뒤늦게 도착한 문자를 확인했다. 마지막 문자였다.

[잘 지내
2016.07.01. 03:07AM]
















 이건 명백히 기성용에 대한 비망록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따금 새벽에 몸을 웅크리고 울기를 반복했다. 방아쇠를 당기면 튀어나오던 총알을 중심으로 뻘건 피가 튀어 오르던 장면들이 악몽처럼 되살아난다. 죄책감에 시달릴 때면 기성용은 같이 눈을 떴다. 열일곱의 기성용은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지만 서른을 넘어선 기성용은 더 이상 입을 떼지 않았다. 섹스를 할 때는 울지 마, 내 얼굴을 감싸며 그렇게 읊조렸다. 형이 울 거 같아요. 속에서 뱉지 못할 말이 아우성친다.
 사랑한다는 말은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축 처진 몸을 감싸 안으며 피곤하냐 묻는 다정함이 전부였다. 사랑에 갈증을 느낀 적은 단연코 없었다. 뺨을 감싸오고 입을 맞춰오는 기성용의 경계 풀린 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건 명백했다. 이제 막 스물을 넘은 아이를 두고 질투를 느낄 때도 그랬다. 그 애랑 가까이 지내지 마. 제 성에 안 차면 남 모가지를 눈 한 번 안 깜빡이고 비트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다. 나는 가끔 그의 질투에 웃음을 터트렸다. 안 어울려요. 기성용은 웃지 않았다. 내 머릴 쓰담는 게 전부였다. 기어코 그게 손찌검으로 이어진 날은 더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변하는 형이 무서운 게 아니라, 변하지 않는 내가 무서웠다. 더 이상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 같은 내가, 여전히 가장 뒤처지는 내가. 그런 내 포장지를 벗겨내는 이가 그 어린아이라는 건 더더욱.
 그래서 새벽하늘 뒤로 속삭인 말이 그렇게 달콤했나 싶었다. 맞닿은 입술이 더없이 다정했었다. 도망가요. 홀린 듯 끄덕인 고개에 후회는 없었다. 단 하루 만에 붙잡혀 땅에 묻힌다고 한들 그 잠깐의 상상이 달았다면 된 거였다. 불안감은 그런 게 아니었다. 나 없이 무너질 당신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어서 그랬다. 그리고 어쩌면 나보다 더 날 잘 아는지도 모르던 당신이 귀신같이 그날 새벽 눈을 떴다. 악몽에 시달려 몸을 벌벌 떨 때는 그렇게 모른 척을 하더니 집을 나서려는 내 뒤로 총구를 들이민 당신이 그렇게도 원망스러웠다.

 “갈 거니.”
 “네.”

 사실 원망스러웠던 건 그런 게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눈앞에 놓인 총구가 거둬진 이후 당신이 그래, 미련도 없이 뱉은 말 따라 울려진 굉음과 그렇게 총알을 중심으로 또 다시 튀긴 피들, 어쩐지 당신은 그렇게 피를 토하며 주저앉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놀라 아무 말도 못하는 내가 결국 할 수 있는 게 왜 그러셨어요 원망 담긴 말 뿐이었다. 눈물이 터져 나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당신 마지막을 보겠다고 그렇게 벅벅 눈물을 닦아냈다. 왜 그러셨어요, 왜 그러셨어요... 할 수 있는 말이 그거뿐이었는지, 바보처럼 똑같은 말만 되뇌었다. 끝까지 침착한 당신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뭔 쓸모가 있니, 네가 없는데.

 당신 몸에 정확히 박힌 총알이 마지막 총알이었던 걸 알아서야 당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당신 곁을 떠날 거라는 걸, 이 새벽이 마지막일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몇 번을 울었다. 그 애한테 결국 잘 지내 세 글자 고작 남기곤.

 사람이 죽었는데요. 경찰을 부른 건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당신 없는 나는 그럼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그걸 묻고 싶었다. 내 선택은 어쩌면 저 멀리 달아난 아이가 더욱이 평범하게 살길 원해서, 또 다른 하나는 원망만 남긴 채 떠난 당신에 대한 마지막 발악으로.











 빨간색 엑스표시가 가득한 달력 위로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이 다가왔다. 백승호는 제 목에 감겨진 넥타이를 몇 번이고 다듬었다. 꽃집에 들려 꽃을 사 제 차에 실었다. 저 오늘 바빠요. 걸려오는 전화에 대고 하는 대답이 일관 돼 있었다. 말끔히 넘긴 머리가 한층 반듯함을 더했다. 손목 위로 두른 시계를 몇 번이나 힐끔 거렸을까, 느릿느릿 도착한 곳이 어울리지 않게 교도소 앞이었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휘어지는 눈이 예쁜 남자가 승호를 보고 결국 웃음이 터진다.

 “안 어울려.”
 “하고 싶은 말이 그거뿐이에요?”

흥민이 괜히 딴청을 피운다. 꽃 예쁘네. 제 품에 들어온 꽃다발을 한참이나 내려다본다. 승호가 그거 말고요, 하고 입을 삐죽였다. 저보다 더 어른스레 차려입고 와놓고 여전히 어린 티를 못 벗었다. 흥민은 승호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갔다. 이젠 저랑 키가 비슷해진 것도 모자라 두꺼워진 몸의 행색은 완전한 어른이었다. 피실피실 웃음이 나온다. 보고 싶었어. 그 말에 승호 얼굴이 그제야 환해진다. 저도요.






< 킬링 마이 달링 > END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